매거진 | [FOOD & WINE] 양진원 대표의 와인 마리아쥬 #44. 대한민국 미식의 메카, 전라도 음식과 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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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나라셀라 작성일2019-11-04 10:20 조회45,152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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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미식의 메카, 전라도 음식과 와인
프랑스, 이탈리아, 몰도바를 헤집고 돌아온 지 2주 남짓. 한국을 경유하는 느낌으로 다시 출발해 이탈리아 에밀리아 로마냐(Emilia-Romagna)주에 한 주간 다녀왔다. 주변에서 직업이 승무원이냐고 물을 정도로 난감한 스케줄이었고 밥벌이가 되는 일자리가 모두 사라지지는 않을까 걱정도 했다. 게다가 맛있는 건 또 어찌나 많은지! 이성의 끈은 여행의 시작이었던 볼로네제 파스타의 본고장 볼로냐에서 이미 툭 끊어졌고 한 주간 소도시를 여행하면서 5kg은 불어난 듯 했으며 돌아오는 비행기에서는 굳게 다이어트를 결심했다. 그런데 어 이거 뭐지? 한식을 보니 다시 입에 침이 고이네. 화이트 트러플 올린 딸리아딸레가 아무리 맛있다 한들 한식만 하겠는가. 제철을 맞이한 재료들을 보니 또 마냥 흐뭇하고 내가 언제 다이어트 결심을 했나 싶다. 맛있으면 0Kcal(…). 모데나 식초, 파르마 햄, 파마산 치즈 등 좋은 식자재가 넘쳐나는 에밀리아로마냐처럼 넓은 논과 밭이 있고 기후도 따뜻해 농사가 잘되고 바다와 넓은 갯벌이 있어 해산물까지 풍부한 지역이 있으니 바로 ‘전라도’다. 외국인이 한국으로 미식 투어를 온다면 단연 전라도의 맛을 보여주어야 한다. 잘 어울리는 각국의 와인과 함께.
함평 굴과 윌리엄 페브르 샤블리 William Fevre Chablis
생선에는 화이트와인 육류에는 레드 와인이라는 공식처럼 ‘굴에는 샤블리’라는 이미지가 대부분의 와인 애호가들에게 확실하게 잡혔다. 실제로 같이 먹으면 맛있기는 한데, 모든 샤블리가 잘 어울리는 것은 아니다. 샤도네이의 특성상 뉴 오크통에서 장시간 숙성하는 와인도 있는데 굴과 잘 어울리는 와인은 뉴 오크통 숙성을 절제한 신선한 스타일이 더 페어링이 좋다. 윌리엄 페브르 샤블리는 기본급의 와인부터 프리미에 크뤼, 그랑 크뤼 와인까지 뉴 오크통을 사용하지 않는 스타일이다. 견고한 바디감과 미네널리티는 잘 간직하고 있으면서 산도가 높아 굴의 비릿한 느낌을 깔끔하게 잡아주면서 오묘한 조화를 이루어낸다. 제철을 맞은 통통한 굴을 한입 가득 입에 넣고 한 모금. 생굴도 굴 무침도 굴전도 모두 샤블리 한 잔이 더해지면 긴긴 겨울로 향하는 가을밤이 더욱 충만해진다.
임실 치즈와 돈나푸가타 루메라 Donnafugata Lumera
‘치즈에 제철이 어디 있어?’라고 하지만 모르는 말씀. 착유를 하는 시기에 따라 맛과 향이 미세하게 다른 치즈가 생산되어 사람도 가축도 살찌는 가을과 겨울에는 남다른 풍미를 지닌 치즈가 만들어진다. 임실 치즈는 서양 식자재지만 이제는 전라도 향토음식에 가깝다. 그 이유는 정말 한국인의 입맛에 딱 들어맞는 마일드한 치즈를 생산하기 때문. 임실에서 만드는 할루미나 스트링 치즈는 마일드한 단백질, 지방과 타닌이 부딪혀 레드와인과는 잘 어울리기 쉽지 않은데 로제 와인과 페어링을 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시칠리아 남서쪽 콘테사 엔텔리나(Contessa Entellina) 빈야드에서 재배된 네로 다볼라, 시라, 피노 누아 품종을 블렌딩해 만든 돈나푸가타 루메라는 산딸기, 석류와 같은 신선한 과실 향과 아카시아 꽃내음이 매력적이다. 물감을 풀어 놓은 듯 매력적인 컬러감에 가벼운 탄닌도 녹아들어 있어 가벼운 샌드위치나 숙성하지 않은 치즈와도 쉽게 어우러질 수 있다.
광주 육전과 레꼴 넘버 41 콜롬비아 밸리 멀롯 L’Ecole No. 41 Columbia Valley Merlot
고기는 그냥 굽거나 삶아도 맛있는데 기름을 두른 팬에 계란 옷을 입혀 전을 부친 육전은 그야말로 ‘우주대존맛’일수밖에 없다. 광주에 가면 육전을 전문으로 판매하는 식당이 있는데 테이블에 전기 팬이 설치되어있어 즉석에서 따끈따끈한 전을 부쳐 먹을 수 있게 시스템을 갖추어 두었다. 전을 부치는 고기는 안심을 써도 좋지만 사태나 홍두깨살처럼 기름기가 없는 부위를 사용해도 맛이 좋다. 고기만 조금 집에 사다 두면 언제든 냉장고를 털어 만들 수 있는 최고의 안주이기에 꼭 시도해 보기를 추천한다. 클래식하게 맛있는 안주는 클래식하게 맛있는 와인과 함께 마시는 것이 제격. 레꼴 No. 31 콜롬비아 밸리 멀롯은 미국 워싱턴주에서 가장 우수한 밭으로 평가 받는 세븐 힐스 빈야드(Seven Hills Vineyard)에서 생산된 카버네 소비뇽과 콜롬비아 밸리에서 생산된 멀롯을 블렌딩했다. 18개월간 오크통 숙성을 해 와인을 오픈을 하자마자 진한 아로마가 쏟아져 나오면서 전을 부치고 난 기름 냄새에 절대 밀리지 않는 포스를 자랑한다. 계피, 넛맥과 같은 따뜻한 향신료, 블랙베리와 자두 크랜베리 등의 상큼한 과실 향의 레이어가 한겹 한겹 흩어지는 와인이다. 육전에서 터져 나오는 육즙과 와인이 만나면 감칠맛이 폭발하는 맛깔진 경험을 해 볼 수 있다.
담양 떡갈비와 낀따 도 크라스토 수페리오르 Quinta do Crasto Superior
어찌 보면 떡갈비는 햄버거 패티와도 같은 다진 고기에 한국식 양념이 더해진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식감이 곱고 간장 양념을 했기에 조밀한 탄닌감을 자랑하고 달달하면서도 감칠맛이 극대화된 양념을 버텨낼 수 있는 와인과의 페어링이 적합하다. 바로 낀따 도 크라스토 같은 와인이. 포르투갈의 스틸 와인인 낀따 도 크라스토는 전통적인 와인 생산지에서 재배된 올드 바인의 깊이를 담고 있으면서도 지루하지 않다. 주 품종으로 사용된 뚜리가 나시오날(Touriga Nacional), 뚜리가 푸랑카(Touriga Franca), 띤따 로리츠(Tinta Roriz)외에 약 25%는 테라스(terraces)형 밭에서 자라나는 70년 수령 이상의 올드 바인에서 얻어진 포도를 블렌딩하기에 이 와인에는 30여 가지 이상의 토착 품종이 함유되어 있다. 신선한 과일이 지닌 상쾌함이 잘 표현된 와인으로 향을 맡자마자 입안에 침이 쫙 고이는 매력을 느낄 수 있다. 산딸기를 비롯한 각종 베리류에 뒤이어 감초와 같은 향신료 노트도 있으며, 부드러운 탄닌감과 잘 짜인 구조감이 인상적이다. 가격대비 놀라운 퀄리티를 보여주는 이런 와인은 역시 전 세계에서 알아준다. 2012년 빈티지는 와인 스펙테이터 100대 와인 중 25위에 올라가며 93점을 받았으며 2013년 빈티지는 92점 2011년 빈티지는 90점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