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 [FOOD & WINE] 양진원 대표의 와인 마리아쥬 #43. 짭짤하고 선이 굵은 경상도 맛과 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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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나라셀라 작성일2019-10-02 08:07 조회56,236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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짭짤하고 선이 굵은 경상도 맛과 와인
‘오그락지’란? 얼핏 ‘오글거리는 낙지’일 것 같지만 무말랭이를 뜻하는 경상도 사투리다. 몇 달 전, 경북 구미 출신의 가수 황치열이 한 티브이 프로그램에 나와 경상도 방언을 이야기하자 함께 출연한 셰프들이 모두 어리둥절해야 했던 기억이 난다. 복상(복숭아), 지래기(겉절이) 등의 방언은 떨어진 거리만큼이나 낯선 단어. 하지만 중독성 강한 맛은 서울을 비롯, 전국에 퍼져 친숙하다. 경상도 음식은 맵고 짠 것이 특징이며 음식에 따로 멋을 내지 않아 소박하다. 확실한 간을 해 서양 음식과 페어링을 하는 것처럼 와인과 함께 했을 때 찰떡같이 좋은 궁합을 보여준다. 와인 메이커도 한국에 와서 보면 깜짝 놀랄만한 의외의 페어링, 선이 굵은 경상도 음식과 잘 어울리는 와인을 소개한다.
안동 찜닭과 케이머스 보난자 카버네 소비뇽 Caymus Bonanza Cabernet Sauvignon
먹기 좋게 토막 낸 닭과 양념이 잘 밴 채소, 당면까지 들어간 안동 찜닭은 종합 선물세트 같다. 보난자는 ‘카버네를 위한 땅, 노다지’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데 캘리포니아 전역에서 이 품종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숨겨진 떼루아를 조합해 만들었다. 닭고기의 풍만한 질감에 간장의 진득함, 마른 고추가 주는 매콤함이 하이라이트 킥을 날리는 찜닭처럼 케이머스 보난자 카버네 소비뇽 또한 부드러운 타닌과 다크 초콜릿을 연상하게 하는 무게감은 한식 양념에도 밀리지 않고 말린 장미꽃과 건포도, 스모키한 아로마가 엑센트를 더해주는 복합미를 지녔다. 한 모금 넘기면 카버네 소비뇽 선물세트를 받은 듯 다채로운 면모가 보인다. 안동찜닭과의 조화는 좋아하는 맛이 가득 들어 있는 종합 선물세트 두 개를 받은 것과 같은 기분이랄까.
울산 언양불고기와 알바로 팔라시오스 페탈로스 Alvaro Palacios Petalos
알바로 팔라시오스 페탈로스에는 다른 와인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매끈한 질감과 감칠맛이 느껴진다. 근원은 떼루아와 60~100년에 달하는 올드 바인 멘시아(Mencia) 100%에 있다. 보르도 카베르네 프랑과 유사하다고 알려졌지만, 생산지인 스페인 서부, 비에르조(Bierzo)는 해발 고도가 무려 500~900m까지 올라가는 고지대로 서늘한 기후대를 형성해 와인에 좋은 산도와 깊이, 깊이 내린 뿌리에서 얻어지는 미네널러티를 담아냈다. 블루베리를 필두로 한 잘 익은 싱싱한 과실, 장미꽃을 찢었을 때 맡을 수 있는 찰나의 기쁨, 부싯돌에서 나는 광물질과 같은 향이 매끄러운 질감과 선이 얇으면서도 힘찬 탄닌감 사이사이에 잘 녹아 있다. 직화로 구워 스모키한 아로마가 살아있으며 얇게 썬 소고기에 얕은 양념을 한 부드러운 언양 불고기와 질감 면에서도 감칠맛에서도 좋은 밸런스를 이루어낸다.
영덕 대게찜과 슈램스버그 블랑 드 누아 Schramsberg Blanc de Noirs
‘대게’는 언뜻 ‘커다란 게’라는 의미일 것 같지만 실제로는 몸통에서 뻗어 나간 8개의 다리가 대나무[竹(죽)]처럼 길다고 해서 붙여졌다. 긴 다리에 가득 찬 부드러운 살을 빼먹는 날도, 슈램스버그 블랑 드 누아와 같은 훌륭한 와인을 마시는 날도 모두 축제인 것을 이 둘을 함께 먹고 마시는 날은 바로 그날이 생일이며 크리스마스 또, 결혼기념일이다. 그야말로 평범한 날일지언정 특별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힘이 있다. 슈램스버그는 1967년 미국 최초로 블랑 드 누아 스타일의 스파클링 와인을 생산한 곳. 피노 누아 85%, 샤도네이 15% 블랜딩으로 풍만한 바디감과 복합미를 지녔다. 흩어지는 결마다 입안에 행복감을 전하는 대게처럼 오렌지 필의 상큼함과 살구 복숭아와 같은 핵과의 과실향, 효모와 브리오슈의 고소하고 섬세한 아로마가 겹겹이 쌓여있다. 와인과 함께 영덕 대게가 전하는 여운은 손을 씻고 싶지 않을 만큼 향기로우며 길고 또 길다.
대구 막창구이와 덕혼 캔버스백 카버네 소비뇽 Duckhorn Canvasback Cabernet Sauvignon
소막창은 소의 네 번째 위로 소 한 마리당 200g에서 400g 정도 밖에 나오지 않는 고급부위다. 캔버스백은 워싱턴주에서 생산되는 카버네 소비뇽 특유의 파워플함과 숙성을 통해 얻어지는 감칠맛을 동시에 지닌 와인으로 질감이 쫀득하고 씹을수록 달콤한 막창구이와 폭죽이 터지는 듯한 좋은 조합을 이루어낸다. 카버네 소비뇽 88%, 멀롯 9%, 말벡 3% 블랜딩으로 힘이 있으면서도 부드럽다. 바질, 오레가노와 같은 이국적인 향신료의 아로마를 지니고 있어 소금, 후추로만 간을 잡은 심플한 요리와 함께했을 때 더욱 돋보인다. 미국 프리미엄 와인의 기준인 믿고 마시는 덕혼이라는 감탄사를 다시 한번 내뱉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