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 [FOOD & WINE] 더위를 이기는 현명한 방법, 민어와 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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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나라셀라 작성일2018-07-31 11:06 조회40,230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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덥다. 더워도 너무 덥다. 한낮에 에어컨이 없는 곳에 있노라면 땀이 주르륵, 조금만 길을 걸어도 녹아내릴 듯하다. 어디 그뿐인가 매일 아침 땀 범벅이 되어 깨는 기분이란! 1994년 이후 찾아온 최악의 폭염이라고 한다. 근 25년 만의 기록적인 더위라고는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이상기후를 보이는 걸 보면 내년에도 후년에도 여름은 덥고 겨울은 더 혹독하게 추울 것 같은 예감이다. 왜 틀린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싶겠지만, 그래도 우리는 오늘을 산다. 그리고 아직 다 가지 않은 8월도 잘 지낼 거다. 예전 조상들이 제철 음식을 먹으며 복달임을 하고 수백 년 동안 잘 지내왔던 것처럼. 8월의 제철 음식, 민어와 잘 어울리는 와인을 소개한다.
민어회와 샴페인 트리보 브뤼 오리진 Champagne Tribaut Brut Origine
요즘에야 사시사철 원하는 식자재를 구할 수 있으니 제철 음식에 대한 개념이 조금 흐려지긴 했어도 회만큼은 다르다. 제철에 맛을 보면 확실히 질감과 풍미가 남다르다는 걸 느끼니까. 샴페인 또한 사시사철 언제 마셔도 맛있지만, 한여름에 맛보는 청량감은 특별하다. 얼마 전에는 샴페인 트리보 브뤼 오리진을 아주아주 평소보다 더 극한으로 차갑게 칠링해서 화이트 와인잔에 마셨는데, 와! 정말 맛있어서 깜짝 놀랐다. 아니 이 정도 가격대의 샴페인으로 이렇게 마음이 움직일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샴페인 트리보는 소규모 NM(Négociant Manipulant)으로 밭을 소유하고 있기도 하고 포도를 사기도 한다. 12개의 밭에서 포도를 셀렉션 하는데 브뤼 오리진은 이들 와인을 만드는 12개의 밭에서 난 포도로 만든 와인을 모두 블렌딩을 해 만드는 와이너리의 대표작이다. 샤도네이 40%, 피노 누아 30%, 피노 뫼니에 30% 블렌딩 했다. 도쟈쥬는 8g/L. 효모와 3년간 접촉해서 숙성하고 30%는 리저브 와인(vin de réserve)를 사용하며 10%는 오크통 숙성을 한 와인을 블렌딩한다. 효모효모하고 후미가 굉장히 길게 느껴지는데 양조상에는 이 포인트에서 차이가 온다고 할 수 있다. 아름다운 산도와 함께 넘쳐나는 과실향 그리고 기나긴 후미까지 긴 여운을 준다. 초고추장을 콱 찍은 쫄깃한 민어회와도 와사비 간장을 살짝 묻힌 민어회와도 매칭이 좋다. 민어도 샴페인 트리보도 4계절 내내 맛있지만 여름이면 더 빛이 난다.
민어전과 몬테스 알파 블랙 라벨 샤도네이 Montes Alpha Black label Chardonnay
민어는 어업 역사도 깊다. 『세종실록』 지리지와 『신증동국여지승람』의 토산조에는 민어(民魚)라는 이름으로 기재되어 있는데 경기도와 충청도의 여러 곳과 전라도•황해도 및 평안도에서도 잡혔던 것으로 기록이 남아있다. 지금은 어획이 부족해 고급 어종의 이미지가 있지만 오랜 역사 속에서 그야말로 “국민 생선”이었던 거다. 국민 생선이라니 국민 와인 몬테스와 짝을 지어주지 않을 수 없다. 고급스러우면서도 친숙한 느낌으로 우리 곁에 있는 걸 보면 이 둘이 닮기도 많이 닮았다. 민어전은 안주로도 반찬으로도 언제나 대환영. 손질한 민어를 한입에 먹기 알맞은 크기로 얇게 포를 떠서 소금과 후춧가루를 뿌리고 밀가루를 얇게 묻혀서 풀어 놓은 달걀에 담갔다가 건져서 뜨겁게 달군 번철에 기름을 두르고 양면을 노릇하게 지진다. 간장, 식초, 물, 잣가루 등의 양념을 합해 초장을 만들어 곁들여 낸다. 고소하면서도 새콤한 양념장 맛이 밸런스가 좋은 몬테스 알파 블랙 라벨 샤도네이와 함께 멋들어지게 어우러진다. 몬테스 알파 블랙은 몬테스 알파의 프리미엄 버전. 태평양과 인접한 아콩카구아 코스타에 밭이 있어 해풍의 영향으로 천천히 포도가 익어가고 덕분에 와인은 좋은 산도를 지니게 된다. 칠레 샤도네이의 상위 버전이라고 생각하면 언뜻 묵직하고 오키한 와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몬테스 알파 블랙라벨 샤도네이는 인텐시티는 좋으면서도 오크 사용은 절제해 과실의 풍미를 잘 이끌어냈다. 복숭아와 같은 핵과의 부드러운 향에서부터 열대과실의 풍부한 아로마가 즐겁고 입안에 들어가자마자 느껴지는 미네널러티가 인상적이다. 신선한 화이트 와인이 지녀야 할 덕목을 잘 갖추었다. 새오크 사용은 40%, 12개월간 숙성을 거쳐 기분 좋은 유질감과 토스티한 풍미를 지니고 있다. 와인의 산도가 민어전의 기름기를 깔끔하게 정리해 자꾸만 와인과 안주가 당기는 조합이다.
민어찜과 폴 자불레 크로제 에르미타쥬 블랑 "뮬 블랑슈" Paul Jaboulet Crozes Hermitage Blanc "Mule Blanche"
마르싼(Marsanne)와 루싼(Roussanne)를 50%씩 블렌딩 한 폴 자불레 크로제 에르미타쥬 블랑 뮬 블랑슈는 그야말로 내 취향의 와인이다. 아카시아 꽃내음이 코끝을 살랑 스쳐 지나가면서도 아주 바디감이 있거나 튀지 않고 후미는 쌉쌀한 기분 좋으면서도 상쾌한 여운을 남긴다. 옷으로 따지면 장식이 화려해서 이 옷을 입기 위해 구두도 액세서리도 세트로 마련해야 할 것만 같은 스타일이 아니라 포인트 장식이 살짝 개성 있게 들어가 있으면서도 디자인이 심플해 이 옷 저 옷과도 잘 어울리고 정장을 입어야 할 자리에도 캐쥬얼한 옷을 입어야 할 자리에도 모두 입고 갈 수 있을 듯하다. 그런데도 소재가 독특해서 꾸민 티가 난달까. 와인이 어릴 때는 아카시아꽃을 비롯한 꽃내음이 에이징이 진행되면 살구나 말린 과일 등의 풍미가 깊어진다. '뮬 블랑슈'는 '흰 노새'를 뜻한다. 기계화 설비가 도입되기 이전 포도밭에서 일을 하던 당나귀를 따서 붙인 이름으로 레이블에도 그림이 있다. 오크통에서 발효과정을 진행했으며 오크통 안에서 쉬르 리(sur lie) 기법으로 에이징 해 복합적인 아로마를 더해준다. 담백하면서도 개성 있는 와인이 삼삼한 민어찜에 포인트를 준다. 매콤한 양념과도 간장 양념의 감칠맛과도 멋들어지게 어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