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 [FOOD & WINE] 양진원 대표의 와인 마리아쥬 #46. 서울에서 1시간 내, JMT 경기도 음식과 어울리는 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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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나라셀라 작성일2020-01-03 13:38 조회36,516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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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1시간 내, JMT 경기도 음식과 어울리는 와인
쉬는 날에는 온전히 집과 집 주변을 맴돌며 시간을 보내는 집순이다. 유난히 이동하는 걸 부담스럽게 여기지만 맛있는 것이 있다면 다른 이야기. 집순이도 움직이게 하는 서울에서 1시간 내 거리에 있는 맛집과 어울리는 와인을 소개한다.
용인 고기리 막국수와 앙리 부르주아 뿌이 퓌메 엉 트라베르탕 Henri_Bourgeois Pouilly Fume En Travertin
강원도 향토음식인 막국수의 최강자가 용인에 나타났다. 고기리 막국수가 바로 그 주인공. 김가루가 소복히 내려앉은 고소한 들기름 막국수, 평양냉면보다 더 순수하고 맑은 국물을 자랑하는 물막국수, 칼칼한 비빔 막국수까지 세 그릇을 다 주문해 먹어야 성이 찰 정도로 무엇하나 빠지지 않는다. 단 한 가지 단점이 있다면 너무나도 큰 사랑을 받고 있어 늘 기다리는 사람이 많다는 것. 하지만 이 순간을 즐겁게 보내는 방법이 있다. 공식적으로 내부에는 와인 반입이 되지 않지만 교외로 나온 김에 순번을 기다리면서 와인 한 잔을 하는 운치를 즐길 수는 있기에. 풍류를 가득 느낄 수 있는 식전주로 물막국수 국물처럼 순수하고 들기름 막국수처럼 고소한 앙리 부르주아 엉 트라베르탕을 소개한다. 뿌이 퓌메 지역 최초로 식재된 생 로랑 라베이(St. Laurent l’Abbaye)의 석회질 토양에서 자란 포도로 만들어 미네럴러티와 신선함이 돋보인다. 흰꽃의 황홀한 꽃내음과 복숭아, 가벼운 시트러스 터치, 뿌이 퓌메 특유의 스모키한 아로마까지 느낄 수 있다. 발랄한 산도가 입맛을 돋우어주며 5개월 동안 쉬르리 숙성으로 복합적인 여운을 남겨준다. 고기리 막국수를 먹고 돌아섰건만 금방 다시 먹고 싶고 방금 헤어졌는데 또 만나고 싶은 것과 같이 가만히 있다가도 불현듯 다시 생각나는 와인.
수원 갈비와 슈발리에 뒤 샤또 라 그라제트 Chevaliers du Chateau Lagrezette
수원은 왜 갈비가 유명한 지역이 되었을까? 유통이 발달한 수원에는 예로부터 전국 3대 우시장 중 한 곳이 있었다. 또, 갈비는 정도의 수원화성 행차 시 수라상에 올랐던 음식. 오늘날에도 상다리가 부러질 듯 푸짐한 차림을 여전히 수원에서 만날 수 있다. 여기에 레드 와인이 더해진다면 임금님 수라상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갈비의 고급스러움에 밀리지도 않고 불을 피우는 번잡함에도 섬세함을 잃지 않는 집중도를 지닌 와인이 있으니 바로 슈발리에 뒤 샤또 라그라제트다. 프랑스의 까오르(Cahors) 지방에서 만들어지는 와인은 ‘블렉와인’이라는 별명이 있다. 탄닌이 강하고 진한 와인이 만들어져 붙은 이름인데 라그라제트에서는 꽉 찬 만족감을 선사하는 지역적 특색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한 단계 더 나아가 우아하고 균형감이 잘 잡힌 와인을 생산한다. 체리와 블루, 블랙 베리 등의 과실향과 함께 따뜻한 향신료의 아로마가 힘차게 올라온다. 가격대비 퀄리티가 워낙 좋으니 국제적 명성도 높다. 2015년 빈티지는 Wine Enthusiast에서 93점, Wine Spectator에서 90점을 받았다. 갈비의 촘촘히 박혀있는 지방과 완벽히 녹아내리는 감칠맛을 선사하는 건 말할 것도 없다. 와인속 탄닌은 갈비속 지방질을 부드럽게 녹이면서 더 많은 플레이버를 방출하게 하고 고기속 지방질은 입안을 꽉 조이는 탄닌감과 쓴맛을 완화시킨다. 전 세계 최다 미셰린 스타 보유자인 알랭 뒤카스 셰프의 7개 레스토랑에서도 만나 볼 수 있는 미식가를 위한 와인이다. 말벡 73%, 멀롯 21%, 따나 6% 블렌딩.
의정부 부대찌개와 구스타브 로렌츠 피노 누아 리저브 Gustave Lorentz Pinot Noir Reserve
서울과 인접하면서 방어선의 중요 지점인 의정부는 한국 전쟁 후 ‘미군의 도시’였다. 보급 기지가 운영되면서 여느 지역에 비해 미군 물자가 풍부했다. 뒷골목으로 빠져나온 물자들을 소화한 곳은 제일시장이었는데 햄과 소시지를 볶고 끓이며 자유자재로 요리했다. 부대찌개는 이런 배경으로 탄생한 음식이지만, 과거는 과거일 뿐. 시간이 흘러 이제는 기존에 있던 음식을 재해석한 우리의 음식이 되었다. 어떻게 보면 김치찌개에 육류가 가미되면서 더 깊은 맛이 부여된 뛰어난 창작물이지 않을지. 각종 햄과 고기, 치즈까지 들어간 국물이 자작한 찌개는 당연히 알코올음료의 좋은 안주가 된다. 간 고기와 스팸과 같은 부드러운 햄에는 역시 결이 고운 피노 누아가 제격이다. 특히 유기농 와인의 선구 주자인 구스타브 로렌츠 피노 누아 리저브는 매력적인 미네널러티와 풍성한 과실향을 담아 강렬한 음식 사이에서도 개성을 마음껏 드러낸다. 촘촘한 탄닌감은 매운 음식이 더해지면 극대화 되면서 와인이 더욱 파워플하게 느껴지는 듯한 마리아주도 경험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