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 [FOOD & WINE] 양진원 대표의 와인 마리아쥬 #37 봄나물과 어울리는 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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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나라셀라 작성일2019-04-08 11:03 조회84,810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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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입안에, 봄나물과 어울리는 와인
프랑스 파리에 아르뻬쥬(Arpège)라는 미쉐린 3스타 레스토랑이 있다. 최고급 레스토랑답지 않게 호불호가 심하게 갈린다. 이유는 재료에 있다. 이곳의 메인 식자재는 세계 3대 진미라고 추앙받는 캐비어도 트러플도 푸아그라도 육중한 소고기도 아닌 채소이기 때문. 저녁 식사는 300, 400유로가 넘는 코스이며 점심 메뉴도 200유로에 달한다. 많은 식도락가가 « 아니 내가 풀떼기를 50만원이나 내고 먹어야 하나 »라며 푸념을 하는 소리도 종종 들린다. 하지만, 셰프는 흔들림이 없고 팬들의 경험담은 다르다. 계절을 느낄 수 있고 세상에서 가장 섬세한 맛을 내는 곳이라는 극찬 또한 이어지니. 그러고 보면 최고의 식사는 계절의 에너지를 가득 담은 음식이고 재료는 땅을 뚫고 힘차게 올라온 새싹들이다. 아르뻬쥬가 한국에 있었다면 분명 봄나물을 메뉴에 올리지 않았을까? 그러고 보면 봄을 식탁 위에 올리는 건 멀리 있지 않다. 일 년에 단 한 번인 이 시기를 놓치지 마시길. 아삭아삭한 식감과 매력적인 향을 지닌 봄나물과 잘 어울리는 데일리 와인 한 잔이면 아르뻬쥬 부럽지 않은 식탁이 완성된다.
Donnafugata Anthilia 돈나푸가타 안띨리아와 냉이 튀김
오랜만에 마셔본 돈나푸가타 안띨리아는 아주 아로마틱했다. 토착 품종인 안소니카(ansonica), 카타라토(catarratto)라는 낯선 품종을 사용하는데 이 품종들은 주정 강화 와인인 마르살라(marsala)를 만드는 데도 이용된다. 안소니카는 시트러스의 상쾌한 아로마가 있기도 하지만 너티하기도 해서 무게감을 부여하는 역할로 블랜딩에 사용된다. 카타라토는 안소니카에 비하면 좀 더 가벼운 스타일의 품종이다. 돈나푸가타의 포도밭은 기원전 4세기부터 존재했다고 하며 160년에 이은 가족 경영 기업이다. 와이너리 레이블에는 여인이 그려져 있는데 이름 또한 연관이 있다. '돈나푸가타' 19세기 ‘피난처의 여인’이란 뜻으로 나폴리의 왕이었던 페르디난도 (Ferdinando) 4세의 아내, 마리아 카롤리나를 뜻한다. 나폴레옹 군대를 피해 시칠리아로 피난을 왔었고 그녀가 머물던 건물이 바로 돈나푸가타의 와이너리가 되었다. 올해는 난생처음 냉이 튀김을 해 보았는데, 바삭한 튀김과 산도가 있는 안띨리아의 페어링이 아주 좋았다. 냉이가 지닌 특유의 향이 아로마틱한 와인과도 팽팽한 긴장감을 보여주어 더 재미있다.
Kim Crawford Pinot Gris 킴 크로포드 피노 그리와 미나리 해산물 볶음밥
뉴질랜드 와인은 구세계의 서늘한 기후를 담아낸 상쾌한 산도와 신세계에서 보여주는 확실한 아로마를 모두 그것도 아주 좋은 가격에 보여준다. 이제 점점 샤르도네와 같은 품종은 밭을 줄여나가고 피노 그리를 많이 심고 있는데 소비뇽 블랑처럼 이 품종이 뉴질랜드에 적합하며 개성이 있는 와인이 생산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킴크로포드 피노 그리는 알자스 피노 그리의 살집과 풍부한 아로마, 이탈리아 피노 그리지오의 상쾌함이 모두 한잔에 복합적으로 담겨진 와인이다. 흰 꽃의 아름다운 향, 시트러스 계열의 상쾌한 아로마를 비롯해 제법 무게감이 느껴진다. 새순이 돋은 봄 미나리를 송송 썰어 넣은 해산물 볶음밥과도 멋들어지게 어울린다. 밥 먹을 때 한잔씩 먹기도 좋게 스크류 캡으로 마감이 되어있는 것도 마음에 든다.
Bianco di Ca'Momi 비앙코 디 카모미와 세발나물전
갯벌의 염분을 먹고 자라는 세발나물은 바닷가 사람들이 봄에 즐겨 먹는 나물로 갯나물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얇고 길쭉한 잎이 마치 작은 부추처럼 생겼다. 쓴맛이 없어서 어느 양념에도 잘 어울리고 약간 짭짤한 맛이 있어 전을 부쳐 안주로 먹어도 훌륭하다. 비앙코 디 카모미는 샤도네이, 소비뇽 블랑, 리슬링, 세미용, 피노 그리지오를 블랜딩했다. 상상하기 어려운 스타일이랄까. 그러면서도 테이스팅을 해보면 입안 가득 퍼지는 향이 아름다워 친숙한 느낌이다. 가볍고 발랄하면서도 자스민 꽃, 서양배, 망고 등의 과실 향과 함께 구수한 효모 향까지 보여지며 복합미가 있다. 가벼운 해산물에 세발나물전을 곁들여 한모금. 이 또한 누구나 좋아할 만한 조합이다.
Bouchard Pere & Fils Bourgogne Chardonnay 부샤 페레 에 피스 샤도네이와 취나물 솥밥
취나물은 산에서 직접 따는 나물이다. 말린 취나물이 있어 일 년 내내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 4월 말, 5월 중순에 수확한 나물이 가장 향이 짙고 식감이 좋다. 시음 적기인 와인처럼 지금이 식용 적기인 셈. 취나물을 사다가 표고버섯을 송송 썰어 넣고 밥을 올리면 봄 내음을 가득 담은 한 그릇이 완성된다. 솥밥의 물이나 불 조절이 어렵다면 모든 재료를 밥통에 넣고 간단히 취사 버튼만 눌러도 좋다. 간장과 들기름을 두른 양념간장에 슥슥 비벼 부샤 페레 에 피스 부르고뉴 샤도네이를 곁들이니 ‘이 고소함과 쌉싸름한 복합미는 무엇인가. 내가 지금 뫼르소를 마시고 있나?’라는 착각이 들 정도로 궁합이 좋았다. 솔직히 기본급 부르고뉴 와인은 큰 기대를 하지 않는 편인데 부샤르 페레 에 피스 부르고뉴 샤도네이는 사뭇 다른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다. 은은하게 퍼지는 잘 익은 살구의 수줍음과 매끄러운 질감까지 모두 잘 담아냈고 와인 자체도 봄꽃 같은 화사함이 있다. 이런 좋은 와인은 숨기려고 해도 자꾸만 티가 나는 법. 2014년 빈티지는 wine&sprits에서 91점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