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 [FOOD & WINE] 보쌈, 족발과 잘 어울리는 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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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나라셀라 작성일2018-02-28 15:45 조회78,518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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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보쌈과 와인
주말을 잘 보내는 방법에 대해 포브스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가족 또는 친구와 시간을 보내고, 운동하거나 여행을 가고, 봉사 활동을 하며, 사람들과 어울리는 문화 활동을 한다. 이 모든 걸 실행할 힘은 계획에 있으며 그것을 통해 소중한 주말 시간을 TV나 보며 낭비하지 않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나의 지난 일요일은 포브스의 충고와는 정반대로 돌아갔다. 발단은 집안에 인터넷 TV 상품을 설치한 것이었다. 우주선도 탐지할 수 있을듯한 커다랗고 또 널찍한 쟁반을 설치해야만 볼 수 있던 케이블 티브이를 끊어낸 이후 얼마 만에 신문물과 조우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일단 집에 붙어있는 시간이 많지 않고 또 ‘TV를 보면 얼마나 볼 것인가’라고 생각해 설치를 미루어왔다. 그런데 어쩐지 이날 나의 일과는 새벽녘이 다 되어서야 끝이 났다. 기사님께서 인터넷과 TV를 설치해주신 정오경부터 새벽 2시까지 소파 주위를 맴돌았던 것. 객관적으로 보면 최악의 시간 낭비로 여겨지겠지만, 사실 나는 아주 행복했다. 대낮이지만 기분 좋게 와인을 열었고, 끼니때에는 배달 앱의 힘을 빌려 보쌈과 족발을 주문해 먹으며 자리를 뜨지 않았다. 오오 꿀맛이었다. 와인이 지닌 탄닌감과 고기에 붙은 담백한 지방질이 절묘하게 녹아 들어 가 입에 쫙쫙 붙었고, 눈앞에는 미드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어 시간도 어떻게 흘렀는지 알 수가 없다. 포브스의 충고는 잘 들었지만, 그쪽 에디터에게 다이어트나 인맥 관리, 여행이나 문화 활동 따위는 한 번쯤 집어치우고 주말에 뒹굴뒹굴하며 와인과 보쌈을 먹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TV 앞에서 맛보는 손에 잡기 쉬운 행복 또한 훌륭하니까. 배달 요리 중 가장 건강한 음식에 속하며 조리가 간단해 주말 밥상의 주인공이 되기에도 좋은 보쌈은 와인과 매칭이 아주 좋다.
젤라틴이 풍부해 피부 미용에도 좋다는 족발. 간장과 생강, 설탕, 파, 마늘 등이 들어간 진득한 양념 맛이 매력적이면서도 강렬해 언뜻 와인과는 잘 어울리지 않을 것 같기도 하다. 그렇지만, 캐릭터가 확실한 신세계 와인과는 좋은 조화를 이룬다. 특히 국민 와인 몬테스 알파 멀롯은 부드럽고 과실향이 풍부한 멀롯 뿐 아니라 칠레의 토착 품종인 까르메네르가 10% 블렌딩되어 있어 스파이시하다. 신선한 과실감으로 입안을 깔끔하게 정리해주며 돼지고기와의 밸런스도 좋다.
족발이나 보쌈을 주문하면 막국수가 따라온다. 아니 어쩌면 막국수를 먹기 위해 고기를 주문했는지도 모른다. 매콤한 양념에 버무린 국수에 고기를 한 점 얹어 크게 한입. 그리고 카스텔로 디 퀘르체토 끼안띠 클라시코 리제르바를 마셔 보았다. 신기하게도 매콤한 양념과 좋은 조화를 이루어낸다. 너무 무겁지 않은 탄닌 덕에 맛이 한층 더 복합적으로 느껴진다. 산지오베제 95%, 까나이올로 5%를 블렌딩해 만들었으며 미디엄 바디의 탄닌과 체리, 라즈베리 등의 고급스러운 과실향을 지녔다. 와이너리는 자갈이 풍부한 그레베(Greve) 마을에 위치하며 카스텔로 디 퀘르체토는 ‘참나무 숲속의 성’을 의미한다.
"보쌈을 먹을 건데 어떤 와인을 함께 하면 좋을까?"라고 누군가 물어본다면 이제 가장 먼저 퍼플 오리지널 말벡을 찾아보라고 답할 것 같다. 고기에 붙어있는 지방과 와인의 탄닌이 절묘하게 녹아들어 가는 마리아주를 경험할 수 있다. 많은 이들이 말벡을 탄닌이 거친 품종으로 오해하고 있다. 천만의 말씀. 샤또 라그레제트(Chateau Lagrezette)가 생산하는 퍼플 오리지널 말벡의 텍스처는 매끄럽기 그지없다. 퍼플 말벡은 바이올렛 꽃내음과 붉은 과실의 아로마가 지속해서 피어오르며 기분 좋은 산미와 우아한 바디감을 지녔다. 샤또 라그레제트는 1503년 라그레제트 성에 말벡을 심으면서 시작되었고, 1980년 까르띠에의 오너 알랭 도미니크 페랭(Alain Dominque Perrin, 현 까르띠에 현대 미술재단 대표)이 샤또 라그레제트를 인수하며 큰 변화를 맞이했다. 유명 와인 컨설턴트 미셸 롤랑(Michel Rolland)이 합류해 프랑스 말벡의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