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 [FOOD & WINE] 양진원 대표의 와인 마리아쥬 #51. 생선조림과 어울리는 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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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나라셀라 작성일2020-06-08 10:22 조회37,520회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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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선조림과 와인
코로나 이후 학교 급식에 채소와 과일을 납품하던 농가들이 어려움에 처했다는 뉴스를 접했다. 그러다 어느 날, 온라인 쇼핑을 하다 보니 어랏 정말 좋은 가격에 감자를 팔고 있는게 아닌가. 아침에 집 앞으로 슥 배송된 5kg의 감자. 많은 양이긴 했다. 금방 소진할 줄 알았는데 그 감자는 아직 김치 냉장고 속에서 깊은 잠을 자고 있다. 채썰어 부쳐보고 갈아서 부쳐보고 튀겨도 보고 갖은 감자 요리를 해보다 이번에는 생선조림에 이용했다. 외출은 줄어들고 집밥을 먹는 날은 늘어난 김에 좋은 와인과 음식을 먹고 차곡차곡 건강해져야지라는 다짐을 하면서. 간만에 집 앞에서 산 뽀오얀 병어와 은빛 날개 자랑하는 제주 갈치 한 마리는 호사로운 쇼핑이었다.
병어조림과 메이오미 샤도네이 Meiomi Chardonnay
메이오미 샤도네이는 한국인 입맛 취향저격 나파 와인의 대표주자인 케이머스 와이너리의 수장 척 와그너(Chuck Wagner)의 아들 조셉 와그너(Joseph Wagner)가 만드는 와인이다. 잘 익은 복숭아와 살구의 기분 좋은 과실 향에 바닐라와 오크 터치가 은은하며 미네널러티와 시트러스 아로마가 복합적으로 느껴진다. 와인은 세 테루아를 블렌딩해 만들었는데 소노마 카운티는 익힌 사과와 배, 유연한 텍스쳐를, 몬테레이 카운티는 미네널러티를, 산타바바라는 구운 파인애플과 열대과실, 향신료 느낌을 부여한다. 와인 스펙테이터 25주년 특집판의 ‘레스토랑 오너들이 선정한 최고의 글라스 와인’으로 선정된 이력이 있다. 스크류 캡으로 마감이 되어있어 가정에서도 한두 잔씩 소비하기 편리하다.
방구석 레스토랑 안에서 페어링할 음식으로 병어조림을 준비했다. 싱싱하고 잘생긴 병어 한 마리와 감자 2개, 양파 1개를 준비한다. 병어는 소금을 살짝 뿌려달라고 해서 가지고 오면 좋다. 생선 한 마리를 기준으로 다진 생강 1/2Ts, 다진 마늘 2Ts, 매실액 1Ts, 양조간장 4Ts, 고춧가루 1Ts, 물 400mL의 양념을 넣었다. 감자와 양파는 두툼 넓적하게 썰고 뚝배기의 바닥에 깔아 분량의 물을 넣어 반 정도 익히고 병어와 양념을 그 위에 넣고 뚜껑을 덮은 채로 5분 정도 더 익혀준다. 와인 안주가 되는 생선조림의 포인트는 슴슴한 양념. 생선 자체의 맛과 향은 살리고 양념이 이 모두를 압도하지 않도록 한다. 병어와 와인의 어우러짐도 좋지만, 밥이 따로 없어도 충분히 식사가 되는 포근포근한 감자와 메이오미 샤도네이의 조화가 풋풋하고 순수한 감성으로 잘 어우러진다.
갈치조림과 덕혼 디코이 로제 Duckhorn Decoy Rose
비행기를 타고 갈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곳인 제주도 갈치조림 맛을 서울에서 즐겨보았다. 병어조림과 다른 점은 감자 대신 무를 충분히 썰어 넣고 조리했다는 것. 양념이 강하지는 않지만, 고춧가루를 이겨낼 수 있는 와인으로 엄청나게 표현력이 풍부한 기억이 있던 덕혼 디코이 로제를 페어링했다. 디코이 로제는 싱그럽고 밝고 건강한 기운을 담고 있는 어메리칸의 느낌 그 자체. 일렁일렁 올라오는 레드베리의 포근함과 입안에서 착 감기는 매끄러운 유질감, 그리고 후미에서 보여주는 감칠맛이 매력적이다. 살짝 달콤한 뉘앙스는 갈치의 여린 살결은 물론이며 조린 무의 달큰한 맛과도 어색함이 없이 잘 어울린다. 드라이 로제를 만들기 위해 당도가 너무 올라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이른 8월 말부터 수확을 시작했다. 69% Syrah, 14% Vermentino, 9% Carignan, 8% Pinot Noir 블렌딩.
광어회와 슈램스버그 블랑 드 블랑 Schramsberg Blanc de Blancs
생선조림과 잘 어울리는 와인을 소개하는 것이 주제이지만 솔직히 슈램스버그 블랑 드 블랑을 회와 함께 마셨다. 코로나 이후로 광어 값이 하락했다는 슬픈 소식을 접하고 상인들을 돕겠다는 마음에 노량진을 찾았다는 건 핑계고 회를 좋아한다. 날생선과 슈램스버그와 같이 좋은 스파클링 와인과의 조화는 말해 무엇. 누구나 다 아는 훌륭한 맛이지만, 약간의 팁과 경험을 이야기하면 블랑 드 블랑은 특히 아주 산도가 좋고 얇은 질감이라 기름기가 많은 생선보다는 광어처럼 심플하고 담백한 생선과 더 상승효과가 있다. 슈램스버그는 미국 스파클링 와인의 정상이라고 불릴 만큼 존재감이 있는데 2013년 도쿄 파크 하얏트 호텔에서 개최한 스파클링 와인 블라인드 테이스팅에서 J.Schram은 무려 돔 페리뇽, 크룩, 떼땅져 등을 재치고 1등을 차지한 이력이 있다. 2년간 효모 숙성 후 출시되기에 브리오쉬, 이스티 한 풍미가 메인이 아니라 백도, 레몬, 자몽, 살구 등 과실 아로마가 더 지배적인데 이런 점이 막 깔끔한 흰살생선과 잘 어울리는 포인트가 된다.